안녕하세요~ 티웃 피드에 이따금 출몰하는 오션입니다. 정말 이따금 만났었는데 이번엔 이렇게 매거진에서 뵙네요~!
다우님들 혹시 서점 좋아하세요? 오늘은 제가 여태까지 봤던 서점 중 가장 작은 서점을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 티웃 매거진의 자리 한 편을 빌려봤답니다.
오늘 소개드릴 곳은 서울 이대역 근처에 있는 모즈나 독립 서점이에요. 대형 서점에선 볼 수 없는 분위기와 디테일이 가득한 곳이랍니다.

이대역 6번 출구에서 뒤돌아 곧장 큰 길 따라 쭉 걸으면 되는데, 이렇게 걷다보면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짠~! 이 아파트를 오른편에 끼고 오름길을 오르고 [고산 16길] 을 찾아 사잇길로 들어가면 ‘고산 16길 9’가 걸린 하얀 독립서점이 나타납니다. 아주 약간만 수고로우면 된답니다! (제 생각엔 그래요 하하!)

저는 예전에 모든 서점은 “공간이 넓어야하고, 책을 놓으려면 적어도 10평이 족히 넘어야 한다.” 고 생각했었답니다. 물론..1평 서점 모즈나를 만나기 전 까진 말이죠!
들어가도 되는건가?
여러 권의 책이 가지런히 유리창에 바짝 붙어 ‘나 서점이오!’ 를 말해주는 하얀 가게. 1평 독립서점 모즈나를 처음 마주했을 때, 두 명만 서있어도 가득 찰 것처럼 작은 느낌을 받아 한참을 밖에서 서성거렸어요.
들어가지 않고 지나가던 동네 주민 마냥 밖에서 보기만 하려 했었는데, 하얀 린넨 앞치마를 두른 책방지기님이 환하게 웃으며 저를 맞이해 주셨답니다.
바로 공간을 착착 정리해서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셨는데.. ‘와, 예상보다 두 명은 더 들어올 수 있겠는데?’ 싶었죠. 그리고 커피 한 잔 권하는 따뜻한 제안과 함께 엉덩이를 붙였습니다. 분명 환한 낮에 들어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어요. 그 순간 느꼈어요. 아…여기서 차를 마시면 참 좋겠다! 이게 바로 저의 첫 모즈나 방문이었답니다.
이렇게 인연이 닿아서 티웃에 모즈나와의 차회를 제안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티웃의 <어디든 차회>가 시작되었고, 저도 참여하게 되었죠.

<어디든 차회>에 참가한 사람은 총 다섯명이었어요. 다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오셔서 근처를 서성거렸어요. 분명 초면인데 ‘저기 돌아다니시는 분이 차회에 참석하시는 분일까?’ 하고 서로를 알아보아서 웃음이 났어요. 이걸 바로 차연이라고 하는거죠 여러분?! 😁👍(아닐 시 비명지름)
Orange juice or black tea?
이 날 차회의 주제는 바로 ‘차를 마시게 된 계기’ 였어요.예상했던 것과 달라서 놀라기도 하고, 겹치는 사연이 있어 반갑기도 했어요.
자그마한 모즈나 안에서 각자의 사연을 들으며 박수를 치고 깔깔 웃고 차를 나눠 마시니 지나가던 사람들도 흘끗흘끗 쳐다볼 정도였답니다! 넓은 공간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좁은 공간안에 사람이 모여 웃고있으니 궁금할 수 밖에요~
그렇게 복닥복닥 모두의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나니 저의 차례가 왔답니다.

어린시절의 저는 홍차를 마트에서 파는 캔 실론티라고 생각했답니다. 모든 세상의 홍차가 다 이런 맛일거라 생각했던거죠.
그러다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된 어느 날,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어떤 어린 영혼은 승무원분께 ‘Orange juice or black tea?’ 를 듣는데요. 블랙티라는 말에 놀래서 냅다 ‘블랙티 플리즈! ‘ 라고 말했습니다. (저 영어잘했죠?) ‘내가 좋아하는 실론티를 해외에서도 먹을 수 있다니 생각보다 유명한 녀석이였잖아?!’ 하고 쾌재를 질렀죠.
곧 제 손에는 뜨거운 물이 담긴 종이컵과 옐로우 립톤티백 한 개가 주어집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컵에 립톤티백을 넣고 위아래로 넣었다 뺐다를 5분가량 해주었을겁니다. (다우님들, 방금 탄식하셨죠? 지난일이라 별 수 없습니다. 단념하십시오…😶🌫️)
떨리는 마음, 입에 한모금이 들어오는 순간…온몸의 세포가 쪼그라들기 시작했어요. 이 느낌은 정말 어제겪었던 것 처럼 여전히 선명합니다. 곧 엄청난 떫음과 배신감이 몰려왔죠. 승무원분께 이건 블랙티가 아닌 것 같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 아기 오션은 영어를 하지 못하니 어림도 없었겠죠? 그저 크나큰 충격과 배신감에 눈물을 흘리며 식어가는 어떤..사약만 바라볼 뿐이었답니다.
엥? 이게 차를 마시게 된 이유냐고요? 우선 원인은 그렇죠. 머리가 좀 더 커다래진뒤 실론티 성분표에 적힌 ‘스리랑카산 홍차’를 찾아나서기 시작했거든요.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더 듣고싶겠지만,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쓸게요. 연락주세요 🙏
작은 찻잔 고 녀석 참!
차회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건 병뚜껑이 들어갈까? 할 정도로 작은 찻잔이었어요. ‘찻잔이 정말 작고 귀여워요!’ 소꿉놀이 같다며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다우의 모습에 꼭 이렇게 작았던 찻잔을 처음 마주한 저의 한 때가 떠오릅니다.

겨우 한 모금이면 끝나버릴 것 같은 잔을 대체 왜 쓰는걸까? 싶었거든요. 왜 작은 찻잔을 쓰는지 주변에 물어봐도 ‘쓰다보니 그렇게 되던데?’ 같은 이유가 될만한 대답이 없어 그대로 미궁에 빠져 점점 흐려져버린 일화랄까요?😅 그렇게 작은 찻잔을 귀여워하는 다우의 모습을 보던 중 작은 찻잔은 절제를 의미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스쳐지나가더군요!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난 이제 그때보다 훨씬 더 작은 찻잔을 쓰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한 모금에 끝나지 않는 찻잔이었다는 걸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죠. 그와 동시에 책방지기님께서 가장 좋아한다는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한 페이지가 생각났네요.
당신이 얻지 못한 답을 찾아내려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당신은 아직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
모든 것은 경험입니다.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살아보십시오.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새 해답 안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낼 것입니다.

언젠가 좀 더 많은 차를 담을 수 있는 큰 찻잔을 손에 넣었었죠. 이 잔이라면 넘치지 않게 양껏 담을 수 있겠다싶어 들떴는데 ‘ 더 큰 걸 사야하나? ‘ 같은 생각이 들만큼 또 부족하게 느껴졌었죠. 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 아예 기존보다 더 작은 개완과 엄지 반마디도 들어가지 않을만큼 작은 찻잔을 구매해버렸어요. 정반대의 행동, 어이없지만 한 층 더 작아진 다구인데도 놀랄정도로 충분했어요. 차맛도 제 입에 훨씬 잘 맞게 되었구요.
맞아요. 이 작은 찻잔의 의외의 모습이 모즈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작은 찻잔 고 녀석 참!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괜찮은 나를 만들어주었네요.
두 손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벼워지는 방법
모즈나는 환경보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서점인데요. 그런 모즈나의 가치관을 반영하여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다회를 마련한 티웃! 플라스틱 생수 대신 브리타 정수기를 선택했네요.
공간에 제약이 있는만큼 챙겨야 할 짐도 많고 분명 번거로운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가볍고 간편한 일회용 식기류와 플라스틱 생수 대신 도자기 그릇과 무거운 브리타를 가방에서 꺼낼 때 내가 직접적으로 실천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뿌듯한지..!
무거움이 휘발되어 가벼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답니다.
브리타의 협찬을 받지 않았습니다 – 티웃-

우리는 종일 작은 찻잔으로 작은 공간에서 차를 나눴어요. 찻잔 속 차에 비친 햇빛이 꼭 반짝이는 한강이 담긴 것 같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한강의 윤슬들이 모여 있었네요.😁 가만히 보니 그 반짝임이 마치 차를 처음 경험해보는 다우의 눈빛을 닮았어요. 또 다시 차를 처음 접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차를 처음 마셨을 때와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는지 잠시 돌아봅니다.
더 이상 작지 않은 모즈나
아늑하고 보호받는 느낌이 드는 공간. 철없는 이유로 서럽게 울어도 따뜻한 손으로 토닥토닥 쓸어줄 것 같은, 책방지기님이 빚은 이 공간이 결코 좁지 않음을 실감합니다.
전깃줄 위에서 지저귀는 참새,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는 문, 그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소리, 그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에 섞인 작은 새의 지저귐, 통통통 걸어오는 꼬리짧은 고양이, 고양이의 날카롭고 둥근 눈매…

모즈나 밖으로 보이는 깨끗히 정돈된 길 위에 돌아다니는 고양이와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자연까지도 전부 책방지기님이 시간을 들여 빚어놓은 모즈나 그 자체였네요.
얼마나 마셨을까요? 그림자는 온데간데 없이 벌써 밖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새 여러 종류의 찻잎이 작지않은 접시를 가득 채웠고 종일 마신 생수병을 세우자면 아마 여섯병은 훨씬 넘었겠지만 브리타를 이용한 친환경 다회 덕분에 플라스틱 쓰레기는 나오지 않았네요!
또 다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끊임없이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늦어 찻자리를 부랴부랴 정리했습니다. 외투를 입고 모즈나 밖으로 나와 서점을 바라보니 처음과 다르게 작지않게 느껴집니다.
세상에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건 이래서 안돼, 저건 저래서 곤란해, 이걸 하기엔 이건 너무 작아… 정신 차리고 보면 존재하지 않는 완벽을 쫓아 또 다시 애쓰는 나를 마주하곤 합니다.
어떤 것을 시작할 때, 크고 작음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모즈나에게, 그리고 이 멋진 장소를 더 멋지게,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따뜻함과 다양함을 불어넣어준 티웃에게 고마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살다보면 마음이 복잡해지고 때론 허무해지면서도 남들보다 뒤쳐지는 느낌에 몸서리를 칠 때가 있습니다. 끝 없는 비교와 경쟁에 온 몸이 힘들어질 때, 위안과 따뜻함으로 가득찬 도심 속 1평 독립서점 모즈나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