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차를 마실까요?

“우리는 왜 차를 마실까요”

차 문화를 좋아하는 여러 다우들에게 물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모였을 때 차를 즐길 수 있어서. 그만큼 맛있고 편안한 음료라서.”
 
“차 하나를 주제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서. 그만큼 끝없이 파고들 수 있어서.”
 
“힘들고 귀찮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찻자리 잘 차려놓고 즐기면은 너무 행복해서.”
 
“커피나 술이 떠오르듯, 그날 마시고 싶은 차, 사용하고 싶은 기물이 문득 떠올라서.”
 
“힘들 때 차 한 잔 마시면, 진득한 위로가 되어서.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서.”

저는 차가 너무나도 맛있어서, 차를 마십니다.

 
그렇게 찻자리를 하나하나 탐미해 들어가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더더욱 차를 마십니다.
 
탐미한다는 게 별 게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행복해하고, 음악, 영화, 미술작품들을 즐기며 여러 감성에 젖어들고, 여행을 다니다 뜻밖의 사건을 마주했을 때, 훗날에는 추억거리가 되는 것. 모두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들입니다. 이를 기꺼이 정돈해보면서, 삶의 매 순간순간을 탐미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탐미’란, 일상을 더욱 멋들어지게 만들어주는 수많은 방법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탐미하는 멋’을 좋아합니다.
 
차 문화 또한 저에게는 마찬가지입니다. 민감한 혀, 섬세한 입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단해 보이는 전문 지식을 공부할 필요도, 그럴싸해 보이는 표현법을 갈고 닦을 필요도 없습니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게 미평하는 것도 아니고, 비난하기 위해 결점을 꼬집는 것도 아닙니다. 차 한 잔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온전하게 즐기고 싶은 것.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에 추억해봄직한 책갈피 하나 끼워넣는 것, 그뿐입니다. 내가 이끌리는 포인트를 아는 것.
알고 있다면, 찻자리는 더욱 즐거워질 테니까요!

제가 찻자리에서 기능적인 측면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수많은 변수들에 따라 매 순간의 차맛은 달라집니다. 포다법과 차 – 기물 – 물의 선별 뿐 아니라, 환경, 날씨, 음용자의 컨디션, 대화 주제, 동석한 사람들과의 거리감까지도.. 깊게 파고들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차문화를 처음 접하시는 많은 분들께서는 이런 점을 어려워하실 것 같습니다. 중요한 요소이지만, 다행히도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기물을 꺼내는 멋. 보고 싶었던 꽃을 발견해 어울리는 화병에 놓아두는 즐거움. 좋아하는 공간에서 친한 다우들과 함께하는 맛. 차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모여 교류할 수 있는 신선함. 그러다가도 조용히 즐기고 싶을 때가 찾아오면, 언제든지 홀로 앉아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니, 진심어린 ‘맛있음’들 뿐인 것입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어떤 거창한 이유도, 원대한 목표도 없습니다. 그냥 ‘차가 존재하는 일상’입니다. 맛있는 것 자체가 너무도 좋은 거죠. 그 맛있음에 의지해서 나 자신 또한 툭 털어놓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거든요.

“우리는 왜 차를 마실까요”

찻자리를 가지다보면 자주 나오는 질문입니다. 어렵지 않은 질문 같은데, 대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본질을 꿰뚫는 물음이라 그런 걸까요. 차를 즐기는 도중에 내가 열성적으로 쏟고 있는 이 애정과 사랑, 열정과 고통, 신념과 집착의 시작을 읽어보는 일이니까요. 차를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 ‘차인’이라면, 언제나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일 겁니다.

‘맛있어서 매 순간을 탐미하고 싶어진다’는 건 제 이유일 뿐입니다.
이 출구 없는 취미에 그토록 달려드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겁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 수만큼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유들이 있겠죠. 차를 마셨을 때 즐거울 일들만 나열해도 한 가득이 될 거에요. 차를 마시고 도자기를 탐구하는 재미. 차와 함께 다양한 다식과 디저트를 페어링하는 즐거움. 힘들고 지쳤을 때 위로가 되어주는 고마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쉬이 의지할 수 있음에 감사함. 친구들과 놀 때 어떤 상황에서든 곁들일 수 있는 자유분방함. 이 많은 즐거움들 중에서 내가 지금 제일 이끌리고 있는 이유. 사람마다, 상황마다, 그 동안 어떤 경험을 겪어왔고 어떤 추억을 지녀왔는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 모든 이끌림들을 공통적으로 엮어주는 결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즐거움들, 우리 다 같이 머릿속에 그려봐요. 몽상하면 파도처럼 흘러 들어오는 생경한 추억과 가능성들을 떠올리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우리는 왜 차를 마실까” 라는 질문에 저는 당당하게, “그것이 너무나도 즐거워서”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께서 차 문화를 어려워하실 것 같습니다.

우선 하고 싶은 말이라면, 다른 음료들처럼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다른 음료들처럼 즐거움 투성이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 좋아하는 음료 하나 정도씩은 있을겁니다. 우리가 커피를 음미하고, 와인을 정성스레 준비하고, 좋은 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차 맛을 더욱 맛있게 만들어줄 기물을 선택하고, 차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추고, 최선을 다 해 우려낸 한 잔 오롯이 집중하며 탐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원리원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답과 오답은 없습니다. 모든 종류의 취미가 그러하듯, 선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날의 이끌림에 맞게 선택할 뿐이니, 찻자리는 언제나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합니다. 재미는 변수들이 손길 닿는 대로 한 찻자리에 다채롭게 모여, 맛있음 한 잔으로 똑 떨어지는 것이죠. 그러니 차문화도 즐겨 봄직한 요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차문화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그토록 많다는데, 그럼에도 주어를 ‘우리’로 정의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차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분들이 늘었습니다. 배움을 갈구하고 이론을 암기하는 것에서 나아가, 가장 궁금한 것들을 알고 싶어 여러 차문화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늘었습니다. 곳곳에 생기는 멋들어진 찻집들 뿐이 아닙니다. 생산, 소비, 수출 등, 산업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통계지표들만이 아닙니다. 차문화대전을 비롯한 여러 차 문화 관련 박람회들만 돌아다녀도 생기가 돕니다. 무언가가, 새로운 가능성들이, 피어오를 것만 같은 그런 즐거운 얼굴들이 곳곳에서 보인다는 거죠.
그래서도 더더욱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즐거워서 마신다고’.

이 지면을 빌려 제 이야기들을 한 번 꺼내보려 합니다.
“우리는 왜 차를 마실까요”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되겠네요.

같이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더욱 즐거운 차 생활을 위해서.

즐거움을 위하여!

 

에디터 세스크라
편집.디자인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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